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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상학

<영상학> 다큐멘터리의 역사

by 하호섬섬 2024. 4. 21.

옛날 필름 카메라

다큐멘터리의 역사

이번에는 다큐멘터리의 역사에 대해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보겠습니다.

다큐멘터리의 역사는 필름의 역사보다 깁니다. 이미지를 통해 직접적인 현실을 기록하는 방식의 다큐멘터리는 그 전통이 17세기 중국 선교 여행을 위해 이미지 자료들이 사용됨으로써 시작되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형식을 갖춘 다큐멘터리는 19세기에 해부학, 시사, 여행 정보 등 다양한 슬라이드 이미지가 매직 랜턴을 통해 영사되면서 본격적으로 구체화하였습니다. 우리가 초기 영화라고 부르는 영상은 허구의 예술이 아니라 단순하고 직선적으로 실제 일어나는 일을 포착한 다큐멘터리의 형식을 띠고 있습니다.

과거의 다큐멘터리

과거의 다큐멘터리로 불리는 대표 영상들에는 1895년 뤼미에르 형제가 제작한 영화 중 열차가 역을 통과해 지나가는 모습을 담은 열차의 도착과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의 모습을 담은 공장을 나서는 노동자들이 있습니다. 이 영상들은 일종의 현실 기록이자 논픽션 영상이며 우리는 이 영상들을 다큐멘터리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로버트 플래허티는 다큐멘터리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인물로 본격적인 다큐멘터리 양식을 확립했습니다. 그의 대표작은 1922년 제작한 북극의 나누크입니다. 이 영상은 장편 다큐멘터리로 혹독한 자연 속에서 살아가는 이누이트의 생생한 삶을 기록해 이누이트가 무엇을 먹으며 어떤 생활 양식을 가졌는지 원주민들에 대한 충실한 관찰 기록으로 남아있습니다. 여러 다큐멘터리의 특성 중 관찰자적이고 사실적인 성격을 표방하고 있으며 이 특성들을 효과적으로 보여주기 위해 롱숏과 롱테이크 기법을 사용하였습니다. 하지만 촬영의 난도를 낮추기 위해 이누이트의 집인 이글루를 개방해서 촬영하거나 과거의 사냥 무기를 사용하는 모습을 보여주거나 촬영 대상인 이누이트의 진짜 가족이 아닌 사람을 동원하며 촬영을 진행하는 등 제작자의 연출이 포함되어 있어 다큐멘터리의 진실성 논란에 불을 지피기도 했습니다.

지가 베르토프는 다큐멘터리 제작자로서 다큐멘터리를 프롤레타리아 혁명운동의 도구로 활용했습니다. 1920년대 혁명기 인민의 삶과 정치 현실을 담은 키노 프라우다가 그 대표적인 예시인데요, 레닌주의 성격을 띤 정치 신문 프라우다를 영상화한 작품입니다. 베르토프는 그의 작품에서 새로운 사회주의를 창조하고자 하는 인민의 열망을 표현하고 카메라의 기계 미학을 옹호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는 다큐멘터리의 진실성과 그 당시 전례 없던 실험 형식을 결합하여 설득력이 있고 실험적인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그의 작품에는 리얼리즘과 형식주의를 결합한 키노 아이, 카메라를 든 남자 등이 있습니다.

그리어슨은 영국 출신의 제작자로 다큐멘터리의 계몽적, 교육적 기능을 강조했습니다. 사회 현실과 일상생활에 기초한 다큐멘터리를 주로 다룬 그는 이국적 삶의 탐험과 관찰에 집중한 플래허티와는 대조적인 모습을 보입니다. 그의 대표작인 탄광촌의 모습을 담은 막장, 야간우편과 빈민촌의 실상을 다룬 주택 문제는 그가 얼마나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고 이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고자 하는지 여실히 보여줍니다.

레니 리펜슈탈은 1930년대 출생의 독일인으로서 나치즘 체제를 옹호하는 선전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습니다. 그가 1935년 제작한 의지의 승리는 나치 전당 대회를 촬영한 정치 영화의 표본으로 불립니다. 이 작품은 무려 200대의 카메라를 동원하여 대규모 군중 장면을 화면에 담아냈고 극단적인 카메라 각도를 이용해 인물을 영웅화시켰으며 음악가 바그너의 웅장한 음악과 리듬감 있는 편집으로 독일 국가주의를 찬양했습니다. 1936년 개최된 베를린 올림픽을 촬영한 올림피아에서는 올림픽이라는 세계 행사의 순수함과 인간 육체의 아름다움을 그려 게르만 민족의 인종적 우월함을 알리고자 했습니다. 리펜슈탈의 다큐멘터리는 인물의 힘과 군중 심리를 독특한 방식으로 묘사해 강력한 미학적 효과를 창출했지만 영상에 담긴 정치적 의도가 불순해 시청자들에게 윤리적 딜레마를 제공한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현대의 다큐멘터리

현대의 다큐멘터리 경향에 대해 알아봅시다. 현대에 들어서 제작된 다큐멘터리는 가상의 구조, 사건의 재조합, 주관적 접근, 매력적인 등장인물, 과거 사건에 대한 재규정, 감정적 호소를 통해 다큐멘터리의 단순 기록성을 뛰어넘었습니다. 디지털 시대 필름의 기록적 존재론이 사라졌고 디지털 합성과 조작의 문제를 제기하기도 하며 다큐멘터리의 역사적 기록과 진실성에 대한 질문을 던집니다. 논픽션을 지향하는 대부분의 다큐멘터리와 픽션을 지향하는 대부분의 드라마 사이의 경계는 대체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도 논의되는 추세입니다. 디지털 시대에 접어들어 제작된 다큐멘터리는 사진의 기록과 관찰의 미학을 넘어서 제작자의 창조적인 개입과 구성의 미학을 요구합니다.

우리나라의 다큐멘터리는 1977년 정수웅 감독이 제작한 초분을 시작으로 그 역사가 이어집니다. 초분은 두 번의 매장 절차를 거치는 옛날 전통 장례식으로 시신을 매장하지 않고 적게는 1년에서 많게는 3년까지 그대로 방치하는 매장법입니다. 이 매장법은 제삿날이나 명절이면 그 앞에서 제사를 지내다가 살이 썩으면 뼈만 추려서 다시 땅에 묻는 방식을 행하는데 초분이라는 명칭은 죽은 사람의 관을 풀이나 짚으로 덮어 만든 무덤이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제작된 다큐멘터리 중 수작이라고 불리는 것들에는 누들로드와 차마고도 등이 있습니다.